예수님 공생애 초기에 문둥병자를 고치신 기사에 대한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예수님의 세 가지 모습에 대하여 묵상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나아 온 병자를 민망히 여기셨습니다 (41절). 민망하다는 말의 쓰임이 조금은 부정적일 수도 있지만, “filled with compassion”이라고 된 영어 번역이 조금 더 명확한 것 같습니다. 내가 나의 부족함으로 또는 간절한 기도 제목을 가지고 주님께 나아갈 때 주님께서 사랑으로 나를 보시고 받으신다는 사실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요. (나의 입장에서 나의 형편을 볼 때 어쩌면 “민망하다”라고 하는 것이 정확할 표현일 수도 있겠네요.)

예수님은 진실로 율법을 완성하시러 오신 분이십니다. 문둥병을 바로 낫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이후에 할 일에 대하여 그 병자에게 말씀하신 것을 보면, 모세가 정한 율법의 예를 따라 제사장에게 알리라고 하셨습니다. 때로는 과정과 절차가 “은혜”의 측면에서 생략 또는 무시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셨던 예수님께서도 그리 아니하셨다고 하는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이 많습니다.

예수님께서 문둥병으로부터 나음을 받은 사람에게 제사장에게 가서 그 몸을 보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율법을 지키는 의미 외에도, 그들에게 증거하는 (44절) 의미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예수님께서는 그 병자를 엄히 경계하셨다는 말씀도 (43절) 있습니다. 자칫 한 입으로 두 말씀을 하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경계하셨던 것은 증거의 내용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병고침을 받은 것만을 강조하게 되면 예수님을 만병통치의 능력을 지닌 용한 의사, 아니면 나의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여 주시는 해결사로 증거하게 될 소지가 분명히 있습니다. 우리가 다 아는 대로 예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죄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는 유일한 구원자이시고, 그것이야말로 내가 증거해야 될 내용인 것입니다.

주일 이원상 목사님 말씀 내용대로, 겉보기에는 참혹하고 실패한 것 같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인류 구원 사역을 “다 이루었다”라고 선포하시는 예수님을 인해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 시온 찬양대 커뮤니티에 올린 글입니다.